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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

지평 - 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기억의 지평 너머로 사라진 옛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남자의 이야기!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은 2010년 출간된 책으로 저자의 소설적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기존 작품들과 차별성을 띄고 있다. 늘 소설의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파리, 저자의 음악적인 문체, 독특한 상상력, 복잡 미묘한 세계관이 저자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여정의 끝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작품세계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 없이 자신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장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 르 코즈. 같은 종류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공유하며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한 시절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린다. 마르가레트가 한 사건으로 인해 경찰청으로 출두할 것을 요청 받게 되고, 경찰에 기록이 남아있는 마르가레트가 경찰청으로 가지 않고 밤기차를 타고 독일로 떠나버린 것이다. 

열병 같던 사랑이 예고 없이 갑작스레 끝나고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가 왜 떠났는지, 어떤 이유로 연락 한 번 없었는지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과거의의 수수께끼로 다가가려 한다. 파리 곳곳에 남아 있는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따라가는 여정의 끝에서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북소믈리에 한마디!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상처 입고 소외된 개인의 운명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파고들어 온 저자는 이 작품에서 일생을 걸어온 이 주제를 변주하여 보여준다. 남몰래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글을 쓰지만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기가 죽는 보스망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격에 맞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마르가레트.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파리에서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그저 하찮은 사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혈통의 미로와 운명의 현기증 속에서 분투하면서도 더 넓은 지평을 바라는 두 사람의 노력은 높이 평가 할만하다.

출판사 서평

2014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최초의 미래지향적 소설! 


기억과 운명에 관한 파트릭 모디아노식 변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모디아노의 세계! 


2014년 10월 9일, 스웨덴 한림원은 파트릭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발표했다. 모디아노가 “기억의 예술을 통해 불가해한 인간의 운명을 소환하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다”는 짧지만 강렬한 선정 이유와 함께였다. 선정의 변이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듯이 파트릭 모디아노는 첫 소설인 1968년 작 『에투알 광장』에서부터 1978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거쳐 최신작 『네가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Pour que tu ne te perdes pas dans le quartier』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상처 입고 소외된 개인의 운명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파고들어왔다. 『지평』 또한 작가가 일생을 걸어온 이 주제의 변주인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도 모디아노의 “기억의 예술”은 진가를 발휘한다. 


2010년 출간된 『지평』은 모디아노 소설들의 특성을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기존 작들과 차별성을 띤 놀라운 작품이다. 모디아노 작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파리가 소설의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며, 작가의 음악적인 문체, 독특한 상상력, 복잡 미묘한 세계관이 특징적으로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지평』은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의 끝에 미래로 향하는 출구가 열린다는 점에서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지평』의 작중인물들은 혈통의 미로와 운명의 현기증 속에서 분투하면서도 더 넓은 지평을 희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모디아노 작품세계의 완성이라 할 만하다. 


“모든 첫 만남은 상처다.” 

사십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온, 잊을 수 없는 옛사랑의 그림자 


사십여 년 전, 이십대 초반의 장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 르 코즈는 격렬한 시위로 어수선한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보스망스가 시위대의 물결에 떼밀려 얼굴을 다친 마르가레트를 약국에 데려다주면서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게 된다.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는 같은 종류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공유하고 있기에 서로에게 끌린다.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가족도 없다. 호적상 보스망스의 어머니라고 되어 있는 여자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환속 신부 차림의 남자를 대동하고 나타나 보스망스에게서 뻔뻔스럽게 돈을 뜯어가기만 할 뿐이다. 마르가레트는 이전에 만났던 부아야발이라는 남자가 그녀를 계속 위협하듯 쫓아다녀서 잔뜩 겁에 질려 있다. 보호해줄 이가 아무도 없는 젊은이들, 사고무친한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다.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는 파리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이 한 명도 없이 외로운 생활을 하던 차에 서로를 발견한 것이다.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 둘 다 자신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보스망스는 남몰래 작가의 꿈을 키우며 글을 쓰지만,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기가 죽는다. 보스망스에게는 그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온전한 자신감”과 “비법 전수라도 받고 싶던 그 자기 확신”이 없다. 그래서 보스망스는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얼굴 표정에서, 말하는 방식에서, 걷는 방식에서, 심지어 앉는 방식에서도 불안이 묻어난다. 보스망스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에게서는 곧잘 미안해하는 사람의 느낌이 났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에 대해서였을까? 그는 홀로 길을 걷다가 순간순간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미안해? 응? 살아 있다는 것이? 그럴 때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리면 길을 가던 사람들이 돌아보곤 했다. (89쪽) 


마르가레트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격에 맞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보스망스와 닮았다. 보스망스를 만나기 전 바게리안의 집에서 보모 일을 하던 시절, 마르가레트는 처음으로 보드카를 마셔보고는 술에 취해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문장을 계속 되뇐다. 그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약과 단절로 이어진 삶을 살면서, 그때마다 이전의 생활은 애써 지우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왔다. 겨우 이십대 초반인데도 그녀는 벌써 여러 번의 삶을 산 것처럼 지쳐 있다. 삶의 이정표가 곳곳에 서 있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그녀에게 절실한 것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가 군중 속에 섞여 사라질까봐 순간순간 두려워한다. 그는 마르가레트에게 눈에 잘 띄도록 빨간 코트를 입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한다. 보스망스는 익명의 군중 속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드러난 마르가레트가 망각의 심연 속으로 다시 가라앉아버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는 마르가레트를 기다리면서 승강장에 막 들어오는 열차를 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모습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객차에서 뒤늦게 내리는 굼뜬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보스망스의 희망과 불안은 위태롭게 겹쳐져 있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가벼운 상처처럼 두 사람에게 남아 그들을 고독과 무감각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어느 책 속의 구절이 보스망스에게 깊은 울림을 지니고 다가오는 것이다. 고독으로 마비된 영혼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가슴 한구석에 지고 가게 될 흉터를 남기기도 하는, 첫 만남이라는 이름의 상처. 


서로의 약한 면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보냈던 행복한 시절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린다. 마르가레트를 보모로 고용했던 앙드레 푸트렐과 이본 고셰가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 집에서 일하던 마르가레트 또한 경찰청으로 출두할 것을 요청받는데, 그녀는 보스망스에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안 돼요, 장, 그럴 수 없어요. 그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경찰 기록에는 있는 사정이 있어요. (…) 내 말을 믿어요, 장, 그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잡으면 절대로 다시 놓아주지 않아요.” 그녀는 다음날 그들 앞에 나서느니 차라리 사라져버리기를 원한다. 일단 독일로 피신한 후 다시 연락하겠노라 약속하고는 밤기차를 타고 떠난 마르가레트에게선 영영 소식이 없다. 


보스망스는 열병 같던 사랑이 예고 없이 갑작스레 끝나고 그후 이어진 어수선한 시절을 마르가레트 없이 살아왔다.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 보스망스는 그녀가 왜 떠났는지, 어떤 이유로 연락 한 번 없었는지 기억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과거의 수수께끼로 다가가보려 한다.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걷는 파리의 거리에서, 보스망스는 젊은 시절의 마르가레트를 쏙 빼닮은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는 그 여자가 정말로 마르가레트이며, 다른 시간의 통로들이 서로 겹쳐져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들은 자주 나란히 길을 가지만, 각자 다른 시간의 통로를 걷는다. 서로 말을 하고 싶어도 마치 수족관 유리로 가로막힌 것처럼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내가 저 여자를 좇아간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의 통로를 지날 것이다. 그러면 이 신시가지에서 우리 둘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137쪽) 


파리 곳곳에 남아 있는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따라가는 여정의 끝에서,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로 만나듯 두 사람은 해후하게 될지, “적어도 의혹이 있는 한 아직 일종의 희망이, 먼 지평을 향한 탈주로가 남은 것이다. 세월이 아직 파괴의 작업을 다 마치지 않은 모양이니 만남은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고 되뇌는 보스망스의 끊임없는 희망이 지평을 넘은 응답을 받아 이루어지게 될지, 소설의 말미를 주목해보자. 


미래라는 지평으로 향하는 밤기차 



『지평』이 모디아노의 작품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과거로 회귀하는 여정의 끝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이든 보스망스는 미래의 가능성과 시간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스물한 살적 자신을 되돌아본다. 


미래…… 지금의 보스망스에게는 날카롭고도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말.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한 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한 현재 속에 있었다. (170쪽) 


사십여 년이 흐른 지금, 보스망스는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미래로의 지평을 열어줄, 과거의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나선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파리에서,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의 만남은 그저 하찮은 사건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삭막한 무관심이 팽배한 도시에서 마르가레트를 기억하려는 보스망스의 노력은 메마른 도시가 내뿜는 차가운 익명성의 바람에 맞서 싸우려는 분연한 시도라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해외 언론 서평 


모디아노는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이다. _페테르 엥글룬드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 


이름 하나로, 단어 하나로, 모디아노는 독자를 아련한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라 크루아 


이 작품은 아련한 그리움의 감정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심지어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하다. (…) 모디아노 작품세계의 분명한 연장이면서도 미묘하게 새로운 변주인 위대한 소설! 텔레라마 


사람들은 유리 수족관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고립되어 있다. 『지평』은 우리가 과연 이 수족관에서 나갈 수 있을지 탐색하는 작품이다. 리베라시옹